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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 서초구
life_talk
시온
인증 25회 · 3일 전
스마트 아파트, 편리함보다 쉬움이 먼저
[조현주의 안전한家 든든한家]조현주 코이지 대표
대부분 아파트에서는 주요 공지나 민원, 공사 일정 등을 세대 스피커 방송으로 안내한다. 솔직히 가끔은 거슬릴 때도 있다. 이른 아침 갑작스럽게 울리는 방송에 놀라기도 하고, 조용히 쉬는 늦은 저녁에 반복되는 안내가 불편하게 느껴질 때도 있다.
그런데 최근에는 이런 안내 방송이 오히려 매우 직관적인 정보 전달 방식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인의 80대 부모님이 재개발된 신축 아파트에 입주한 지 3년이 지났는데도 여전히 월패드 사용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으면서다. 관리사무소 공지를 확인하는 방법, 방문자 확인, 난방 설정 등 기본 기능조차 자녀가 올 때마다 다시 설명을 들어야 할 정도라고 한다.
신축 아파트에서는 많은 기능이 디지털 시스템으로 제어된다. 월패드로 방문자를 확인하고 승강기를 호출하며 방문 차량을 등록한다. 난방과 조명도 조절하고, 스마트폰 앱으로는 관리비 확인과 공지사항 전달이 이뤄진다. 일부 단지에서는 헬스케어 기능이나 응급 호출 시스템까지 도입되고 있다.
문제는 기술이 발전하는 속도만큼 사용하는 사람들에 대한 이해가 충분히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특히 고령 입주민들에게 스마트 아파트는 때때로 ‘편리한 집’이 아니라 ‘어려운 집’이 되기도 한다. 작은 글씨와 복잡한 메뉴, 터치 방식의 시스템은 디지털 기기에 익숙하지 않은 고령자에게 상당한 부담이 될 수 있다. 젊은 세대에게는 직관적인 화면 구성도 고령자에게는 낯설고 복잡하게 느껴질 수 있다.
실제로 관리사무소 공지가 앱이나 월패드 중심으로 바뀌면서 정보 전달의 사각지대가 생기는 경우도 있다. 스마트폰 알림을 보지 못하거나 월패드 확인 방법을 몰라 중요한 내용을 놓치는 것이다. 승강기 점검이나 단수 안내처럼 생활과 직결되는 정보조차 제대로 전달되지 않는다면 이는 단순한 불편을 넘어 생활 안전의 문제로 이어질 수 있다. 화재나 재난 상황에서는 이런 차이가 더 크게 드러난다.
앞으로의 스마트 아파트는 단순히 기능이 많은 아파트가 아니라 누구나 쉽게 이해하고 사용할 수 있는 아파트가 돼야 한다. 초고령 사회에서는 디지털 접근성 자체가 중요한 안전 요소가 되기 때문이다.
최근 국내 건설사들도 고령자와 장애인을 고려한 스마트홈 서비스를 선보이고 있다. 실제로 포스코이앤씨는 2024년 ‘노인·장애인 특화 스마트홈 서비스’를 공개했다. 자주 사용하는 기능만 단순하게 모은 ‘원클릭 스마트 스위치’, 음성과 화면 점멸을 활용한 시각·청각 보조 기능, 응급상황 시 가족에게 자동으로 알림을 보내는 스마트케어 기능 등이 포함됐다. 기존처럼 복잡한 메뉴를 여러 단계 거쳐야 하는 방식이 아니라 고령자도 직관적으로 사용할 수 있도록 단순성과 접근성을 높인 것이 특징이다.
이처럼 앞으로 아파트에 도입되는 월패드 화면의 글씨 크기를 키우고 기능을 단순화하며, 음성 안내를 강화하는 방향을 충분히 고려할 수 있다. 관리사무소 또한 앱 공지만으로 끝내는 것이 아니라 고령 입주민을 위한 병행 안내 방식을 고민할 필요가 있다. 구축 아파트의 스피커 방송처럼 다소 오래된 방식이라도 누구나 즉시 이해할 수 있는 전달 방식에는 여전히 장점이 있기 때문이다.
초고령 사회에서 좋은 아파트란 단순히 최신 기술이 많은 아파트가 아니다. 어린아이부터 고령자까지 누구나 쉽게 이해하고 사용할 수 있는 환경이 갖춰진 곳이어야 한다. 아무리 좋은 시스템도 누군가에게는 복잡하고 어려운 장벽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기술은 계속 발전하겠지만 결국 사람의 삶을 편안하게 만들지 못한다면 진정한 생활 기술이라고 말하기 어렵다. 초고령 사회 속 아파트의 스마트화 역시 사람에 대한 이해와 배려를 우선으로 다시 살펴볼 필요가 있다.
조 현 주 l 한국편의증진연구원(코이지) 대표. 시니어 대상홈케어 콘텐츠·플랫폼 개발. 저서 ‘부모님을 위한 나들이 안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