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퇴 도시 탐구] (1) 美 플로리다주 '더 빌리지스'
박기홍 기자
미국 플로리다주 ‘더 빌리지스’ 내 광장 앞 도로에서 입주자들이 골프카트를 타고 이동하고 있다. 미국 최대 은퇴자 도시인 더 빌리지스에는 160㎞가 넘는 골프카트 전용 도로가 깔려 있다. 고령 입주자들은 골프카트를 타고 병원, 쇼핑몰, 카페, 식당 등 어디든지 갈 수 있다. /더 빌리지스 홈페이지
미국 플로리다주 올랜도 도심을 벗어나 북서부쪽으로 1시간쯤 차를 달리다 보면 낯선 풍경이 펼쳐진다. 자동차 대신 형형색색으로 꾸민 골프카트 수십 대가 도로를 누빈다. 이 지역 주민 대부분은 병원과 마트, 골프장, 식당까지 골프카트로 이동한다. 세계 최대 은퇴자 도시로 꼽히는 ‘더 빌리지스(The Villages)’ 이야기다.
1992년부터 본격 개발한 더 빌리지스는 면적이 130여㎢(약 4537만평)로 여의도 50배쯤 된다. 미국 전역은 물론 유럽·남미·아시아 등 전 세계 50여개국에서 몰려든 은퇴자 15만여명이 살고 있다. 영국 가디언이 ‘은퇴자를 위한 디즈니월드’라고 표현할 만큼 활력과 일자리가 넘치는 시니어 천국으로 불린다.
◇골프카트 5만대 달린다
이 도시를 설계한 고(故) 해럴드 슈왈츠(Schwartz)는 애리조나의 유명 은퇴도시 ‘선시티’을 벤치마킹해 골프장·수영장 등 압도적인 편의시설을 확충하며 은퇴자 욕망을 정확히 꿰뚫었다고 평가받는다.
그러나 그가 처음부터 성공한 건 아니다. 1970년대 초반 이동식 주택 단지를 매입해 시니어 대상으로 팔았지만 10년간 400채밖에 팔리지 않았다. 그는 고민 끝에 집만 팔아서는 안된다고 결론을 내렸다. 슈왈츠는 “좋은 집도 필요하지만 시니어를 위한 생태계 구축이 더 중요하다”면서 “노년은 활기차게 즐기는 시간”이라고 했다.
가장 먼저 고안한 게 골프카트 전용 도로망이다. 시니어가 운전대를 놓는 순간 사회적으로 고립된다는 점에 착안해 도시 전체를 잇는 골프카트 전용 도로망을 약 160km(100마일)나 깔았다. 카트만으로 장보기, 병원 방문, 외식 등 웬만한 활동은 모두 가능하도록 동선을 짰다. 현재 이 도시에는 5만 대 이상의 골프 카트가 다닌다. 운전 능력이 떨어지는 노년층에게 이동의 자유와 재미를 보장한 것이 성공 비결 중 하나라는 평가도 나온다.
여기에 3000개가 넘는소셜 클럽은 외로움을 원천 차단한다. 독서, 요리, 미술, 연극, 댄스 등 취미별 모임은 물론 이름이 같은 사람끼리 모이는 클럽까지 있을 정도다. 매일 밤 3개의 커뮤니티 광장에서 무료 공연이 열리고, 주민들은 이웃과 어울리며 사회적 연결망을 유지한다. 50개가 넘는 골프 코스는 주민들이 건강과 교류를 동시에 챙기는 핵심 인프라다. 병원·마트·골프장·레스토랑·공연장·클럽·스포츠시설 등에서 일자리 수요도 많아 경제 활동도 가능하다.
◇라이프스타일에 맞춰 집 옮겨
더 빌리지스에 입주하려면 가구당 최소 1명은 55세 이상이어야 하며, 19세 미만 미성년자는 연간 30일 이상 체류할 수 없다.
주택 가격도 다양하다. 보급형인 약 2억7000만원짜리부터 프리미엄급인 30억원짜리까지 다양하다. 주목할 점은 집 크기와 상관없이 월 190달러(약 27만원)를 내면 체육관, 수영장, 골프장 등 도시 내 모든 편의시설을 이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주민들은 평균 세 번 이상 집을 사고 파는 것으로 알려졌다. 더 다양한 커뮤니티를 경험하기 위해 이사하거나, 자산 상황과 라이프 스타일 변화에 맞춰 작은 집이나 큰 집으로 이동하는 경우가 많다. 반대로 이 도시를 떠나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건강이 나빠져 요양시설로 옮겨야 하거나 가족과 가까이 지내기 위해 고향으로 돌아가는 경우에 불과하다.
전문가들은 앞으로 국내에서도 단순 주거시설 공급을 넘어 커뮤니티·의료·문화·이동 인프라를 결합한 복합 시니어 도시 개발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국내 시니어 시설 상당수는 여전히 요양·돌봄 중심에 머물러 있기 때문이다. 마강래 중앙대 도시계획부동산학과 교수는 “은퇴자 마을은 일자리,사회적 교류, 의료 서비스란 삼박자를 다 갖춰야만 성공할 수 있다”며 “대규모 타운형 개발은 민간 주도로 추진하고 공공은 소규모 마을을 늘려나가는 방안이 필요하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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