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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 서초구
문화/취미
시온
인증 30회 · 3일 전
소화 불량 아내를 위해, 시장을 돌고 돌며 고른 것
▲밥솥에 감자를 쪘다. 보슬보슬한 감자를 아내가 잘 먹었다. ⓒ 이혁진관련사진보기
세 사람 사는 집에 가라앉은 분위기가 맴돈다. 아내가 속이 불편해 사나흘 식사를 못 하고 있다. 보통 소화 불량에는 소화제로 해결하는데 이번에는 회복이 더디다. 아내는 식사 대신 죽을 먹고, 아버지와 나는 밥을 먹는데 먹어도 먹는 것이 아니다.아내는 차도가 없자 초조하다. 최근 아내가 식사량을 조금 늘렸지만 이것이 위와 장에 부담을 줄 정도는 아니었다. 아무래도 올해 1월에 태어난 손주를 보러 오가며 양육에 신경을 쓰다 보니 면역과 체력이 떨어진 것으로 짐작된다.그리고 내가 살림을 해보니 매끼 음식과 식사를 30~40분 준비하는 것은 무리다. 그간 아버지와 나는 아내가 차려주는 밥을 거저 먹은 것이다. 반대로 아내는 식사를 차리자마자 허겁지겁 식사를 해야 했고, 그로 인해 소화에 문제가 생긴 것 같았다.
아내는 지금 죽으로 속을 달래고 있다. 속이 불편하면 먹는 것도 만드는 것도 귀찮은 법이다. 아내가 누워만 있으니 아버지와 나는 비상이 걸렸다. 며느리 사랑은 시아버지라고 아버지는 아내가 아픈 것 같다며 내게 살피라고 무언의 눈치를 준다.나는 다가가 아내의 안색을 살폈다. 약 대신 뭐든 먹기만 하면 나을 것 같았다. 시장에서 아내의 먹거리를 찾아보기로 했다. 전날 시장에 가면서 누워있는 아내에게 먹고 싶은 것이 혹시 있는지 물었다. 이는 물으나 마나 한 형식적인 질문이었지만 아내는 뜻밖에 의향을 말했다."당신이 보기에 맛있으면 사 와요!"이 말은 입에 맞는 걸 사 오면 한번 먹어보겠다는 것이며, 잃어버린 입맛도 빨리 회복하고 싶다는 의미로 들렸다. 시장에서 아내가 먹을 것을 열심히 찾았다. 그러나 마땅치 않았다. 평소 간식거리로 사는 옥수수, 붕어빵, 순대 등은 지금 상태로는 소화가 안 되는 음식이다.
▲보성의 햇감자를 한바구니 샀다. 아내가 좋아하는 감자를 골랐다. ⓒ 이혁진관련사진보기
빈손으로 가면 아내가 섭섭해할 것 같아 시장을 한 바퀴 더 돌았다. 그래도 찾지 못했다. 카트를 바닥에 잠시 세워 놓고 소화에 도움 될 음식이 없을까 한참 고민하다 시장 입구에서 펼쳐 놓은 햇감자가 눈에 들어왔다. 흙 묻은 감자를 한 바구니 샀다. 아내에게 주먹만 한 감자를 삶아 으깨 주면 한술 뜰까 해서 고른 것이다. 어릴 적부터 아내는 감자를 유독 좋아했다는 말도 자주 했다.밥솥에 찐 감자를 아내에게 보여주었다. 감자 한 개를 끝까지 먹지 못했지만 아내는 맛있다는 표정을 지었다. 나머지는 나중에 또 먹어보겠다고 했다. 감자가 죽보다 훨씬 맛있다는 것이다. 아내를 돕겠다며 내가 며칠 식사를 준비했지만, 혼자 감당하려니 모든 게 쉽지 않다. 아내가 없는 식탁이 썰렁하기만 하다. 아내는 투병하는 나를 간호하는 데 이력이 났지만, 정작 자신이 탈이 나면 속수무책이다. 병이 혹시 나 때문에 생긴 것이 아닌가 하는 가책을 느낀다.내가 아내의 쾌유를 비는 것은 당연하다. 내가 가장 보고 싶어 한 것은 아내가 감자를 맛보고 맛있다며 보여준 미소이다. 나는 그 표정에서 아내가 금방 건강을 회복할 수 있는 가능성과 자신감을 발견했다. 이번 주에 아내는 위장 검사를 받기로 했다. 예전에도 이런 일이 있어 검사를 받았는데 별다른 문제가 없었다. 이번에도 무탈할 것이다. 조만간 식탁에서 아내와 함께 세 식구가 즐겁게 식사하기를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