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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 서초구
문화/취미
시온
인증 30회 · 2일 전
노세 노세 젊어서 노세
[뉴스투데이=민병두 회장]
경로당에 가면 점당 100원짜리 고스톱하는 풍경을 볼 수 있다. 하루 종일 고스톱을 하다 보면 종종 다투는 일도 발생한다. 어느 정도 하면 시들시들해질 만도 한데 중독성이 있는 것인지, 아니면 다른 놀이가 없어서 그런 것인지 고스톱 판이 계속 벌어진다. 그렇게 남은 삶을 살다가는 것이 허무하지 않을까? 이것은 나의 생각이다. 그런데 당사자들은 치매에 걸리지 않으려고 뇌 운동을 한다고 한다.
인간은 본능적으로 유희하는 존재인 ‘호모 루덴스(Homo Ludens)’이다. 동물도 장난을 치고 놀이를 하지만 인간만큼 유희를 즐기는 존재는 없다. 놀이는 창의성의 산물이다. 성취 지향적인 노동과 달리, 놀이는 과정 그 자체에서 즐거움을 느끼게 한다. 새로운 규칙을 만들며 배우고, 상황을 판단하며, 즉흥적으로 반응하는 과정은 인지 능력을 예리하게 유지한다.
놀이는 사회적 가면을 벗고 타인과 수평적인 관계를 맺게 하며, 이는 고립된 노년기에서 사회적 유대감을 회복하는 핵심적인 통로가 될 수 있다. 나이가 들면서 머리가 굳어지는 것이 아니라 유연한 상태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예측 불가능한 ‘놀이적 상황’에 스스로를 노출하는 것이 좋다. 놀이는 단순히 즐거운 것이 아니라, 뇌 내 보상 체계인 도파민 분비를 촉진한다. 이는 노년기의 무기력증과 우울감을 상쇄하는 가장 자연스럽고 강력한 치료제이다.
놀이하는 동안 인간은 시간을 시계의 흐름이 아닌, 내가 몰입하는 순간의 깊이로 경험한다. 이것이 굉장히 유용하고 좋은 경험이다. 몰입을 했을 때 시간의 주인이 된다. 특히 예술성이 있는 놀이일수록 그런 성취감을 높여 준다.
어른이 놀지 않는 이유는 여러가지가 있다. 호기심이 없어지거나, 놀기가 귀찮아지거나, 새로운 불확실성에 부딪히기 싫기 때문이다. 어느새 지루함을 자신의 친구로 생각한다. 고독을 친구로 생각하는 것과는 다른 개념이다. 인간이 지루함과 타협해 그것을 일상의 동반자로 받아들이게 되면 사회적 관계는 점차 단절된다. 텔레비전이 가장 익숙한 동반자가 된다. 이 경우 뇌의 자극이 줄어들면서 노화가 더 촉진된다.
각자의 취향이 다르지만 고스톱보다는 활동적인 유희가 바람직하다. 크리켓과 당구의 요소를 결합한 게이트볼이 인기다. 망치 모양의 스틱(채)으로 공을 쳐서 코스에 있는 3개의 게이트를 차례대로 통과시킨 뒤 골폴에 맞히는 경기다. 무리하게 뛰지 않아도 되며, 허리 근력과 집중력을 기르는 데 매우 좋다.
게이트볼의 모태가 된 크로케도 인기다. 잔디밭 위에서 나무 망치로 큰 공을 쳐서 여러 개의 아치를 통과시키는 규칙으로, 크리켓과 비슷한 규칙과 타격감을 제공한다. 피클볼 (Pickleball)은 최근 시니어들에게 전 세계적으로 큰 인기를 끌고 있는 라켓 스포츠이다. 테니스, 탁구, 배드민턴의 규칙이 혼합되어 있으며, 코트 크기가 테니스의 절반 정도다. 공이 테니스공보다 가볍고 많이 튀지 않아 관절에 무리가 덜 가면서도 유산소 운동 효과가 뛰어나다.
당구와 파크골프는 대세로 자리 잡았다. 당구의 운동 효과는 이동 거리에 있다. 당구대의 둘레는 크기에 따라 7m에서 10m 정도 된다. 한 시간 당구를 즐길 경우, 약 2km를 걷는 효과가 있다. 공을 맞추기 위해 노력을 하다 보면 집중력도 좋아지며 치매 예방에 도움이 된다. 파크골프는 자연 속의 전략적 유희를 즐길 수 있어 최고의 시니어 유희로 자리 잡았다. 단순히 걷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지형을 읽고 타수를 계산하며 클럽의 각도를 조절하는 고도의 전략 게임이다. 계절마다 변하는 잔디와 바람을 느끼며 타인과 담소를 나누는 '사회적 상호작용'이 결합되어 있어 정신적 건강에 탁월하다.
이런 유희가 인기가 있는 이유는 나름의 이유가 있다. 단순히 시간을 때우는 놀이가 아니라, 노년의 삶을 업그레이드하는 유희는 다음 세 가지를 고려해야 한다.
공간의 확장(Outbound): 실내의 좁은 공간을 벗어나 자연과 빛을 마주하는 곳으로 나아가야 한다. 뇌는 시각적 개방감을 느낄 때 더 창의적으로 반응한다.
협동적 경쟁(Cooperative Competition): 혼자 하는 것보다 타인과 규칙을 공유하고, 서로의 전략을 읽으며 교감할 수 있는 활동이어야 한다.
인지적 가변성(Cognitive Variability): 매번 똑같은 패턴(고스톱의 반복)이 아니라, 매번 다른 상황(날씨, 지형, 상대의 전략)을 마주해야 뇌의 가소성이 유지된다.
인문·예술 활동은 지적 유희의 끝판왕이다. 내가 만든 콘텐츠가 커뮤니티에서 반응을 얻을 때 발생하는 보상감은 도파민을 분비시키는 가장 건강한 방법이다. 스타가 되지 않아도 좋다. 가족 구성원이나 친구들이 인정을 해주기만 해도 좋다. 단순한 취미를 넘어, 자신의 삶을 설계하는 유희 활동도 있다. 라이프 디자인 활동이다. "내가 앞으로 무엇을 하고 살 것인가?"라는 질문에 답을 찾아가는 과정을 게임화하는 것이다. 10년 후의 버킷리스트를 구체화하고, 이를 위한 '작은 과제(Micro-missions)'를 설정하여 달성해 나가는 것 자체가 하나의 커다란 롤플레잉 게임이 된다.
경로당이나 커뮤미니센터는 유희의 플랫폼화를 지향하면 좋다. 놀이의 모듈화, 즉 오늘 하루는 '파크골프', 내일은 '시사 토론', 모레는 '디지털 아트 큐레이션'처럼 매일매일 새로운 자극을 선택할 수 있는 '유희의 메뉴판'을 제공하는 것이다. 특정 공간에 갇히지 않고, 시니어들이 스스로 자신만의 '놀이 공간'을 발굴하고 지도를 만드는 활동을 권장해야 한다. 놀이의 탈중앙화이다. 결국 노년의 유희는 "나는 오늘도 새로운 것을 배우고, 나만의 방식으로 재미를 창조한다"는 효능감을 느끼는 활동이어야 한다.
민요이자 유행가에 이런 구절이 있다.
“노세, 노세 젊어서 노세. 늙어지면 못 노 나니.
얼씨구 절씨구 차차차, 지화자 좋구나 차차차”
늙는다고 놀이가 끝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노년은 일과 경쟁에서 벗어나 진정한 유희를 배울 수 있는 시기다. 나름의 방식으로 놀 수 있어야 한다. 노년의 인생은 일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잘 놀기 위해 존재하는 것인지도 모른다.